노년이라는 세대의 진짜 모습을 담아내다 - 이미 노인이거나 노인이 되어갈 우리 모두의 필독서

퇴적 공간

왜 노인들은 그곳에 갇혔는가

오근재

출판사 민음인 | 발행일 2014년 2월 5일 | ISBN 978-89-601-7352-1

패키지 소프트커버 · 변형판 145x215 · 252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라 할 수 있는 ‘노인 문제’를 인문·철학·예술·역사 등 다채로운 관점으로 접근해 독특한 견해로 풀어낸 책. 이 책의 제목인 ‘퇴적 공간’은 도시의 인위성에 밀리고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들이 강 하구의 삼각주에 쌓여 가는 모래섬처럼 몰려드는 모습을 지칭하여 저자가 만든 조어다. 다시 말해 가정이라는 집단에서의 1차적 추방과 사회적 변화에 따른 2차적 추방이 교차하면서 형성된 공간을 일컫는다. 서울의 탑골공원, 종로3가 역, 인천의 자유공원 등이 바로 우리 주변의 ‘퇴적 공간’이다. 이 공간에 모여 있는 노인들은 지나간 세월을 퇴적층처럼 간직하고 있는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다. 대학 교수직에서 물러난 저자가 퇴적 공간을 누비면서 노년이 지닌 고독의 무게와 소외의 실상을 차분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는 『퇴적 공간』은 늙음을 통해 젊음을, 군집에 숨은 개별적 고독을, 존경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차별을 이야기한다. 또한 늙은 나, 늙어갈 나의 모습은 물론 내가 머물 사회·물리적 장소를 응시할 기회를 만들어 준다. 따라서 이 책은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현재와 미래 모습을 담은 보고서라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노화’란 단순히 생물학적인 의미로 유기체 기능의 퇴행과 감퇴만을 말하지 않는다. 건강한 신체와 지적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 해도 노동 시장에서 퇴출되면 사회적인 쓸모를 인정받기 어렵고, 무엇보다도 자본주의 시장에서의 상품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렇게 본다면 노화는 한 개인이 노동시장으로부터 밀려나는 거리에 비례한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 본문 중에서

 

 

노인이 되어 노인을 마주하다

얼마 전 뉴욕 퀸즈에 위치한 패스트푸드점이 좌석을 장시간 점유하는 한인 노인들의 매장 이용 시간을 제한하는 방침을 내려 국내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노인들이 주로 머무는 서울 종로 일대의 패스트푸드점이나 카페에는 최근 적은 비용으로 오랜 시간을 머무르며 담소를 나누거나 끼니를 해결하는 노인들이 늘어났다는 언론 보도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이는 노인이 머물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관심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다.

UN이 규정하는 고령화 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7퍼센트를 넘는 사회)에 진입한 지 오래인 한국에서 노인 문제는 더 이상 감추기 어려운 사회 문제 중 하나다. 이처럼 점점 늘어나는 평균 수명이 과연 우리에게 축복인가 재앙인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저자의 고민은 시작됐다.

대학 교수로 20년간 근무한 오근재 교수는 교수라는 직함에서 물러나면서 사회적 기준의 ‘노인’이 되었다. 저자는 탑골공원과 종묘시민공원, 인천자유공원, 종로3가, 낙원동 뒷골목 등 노인들이 운집한 공간을 누비며 노인들의 삶을 깊이 들여다본다. 이러한 ‘퇴적 공간’에서 만난 노인들에게 저자는 동질감과 연민을 동시에 느끼며, 가족과 어울리지 못하고 경제적으로도 넉넉지 않은 노인들이 주를 이루는 이 공간이 노인들 또는 제3자에게 어떻게 다가가는지 파악하고자 애쓴다. 이렇듯 고단하면서도 절박한 작업의 결과로 탄생한 『퇴적 공간』은 노인들이 지닌 소외와 고독의 감정을 가감 없이 묘사하면서 그 원인을 파악하고 조심스럽게 해법을 제시한다. 저자는 우리가 이 문제를 모른 척할 경우 늙음과 죽음, 나아가 인간이 자연의 산물이라는 본원적인 사유를 받아들이는 감각 자체를 상실하게 될 것이라 경고한다. 삶이 지닌 기본적인 가치에 대한 저자의 염려는 결코 묵과해서는 안 될 강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재직하고 있던 대학에서 퇴임을 한 후 나는 한동안 탑골공원과 종묘시민공원 일대를 탐사했다. ‘탐사’라고 하는 까닭은 나의 발걸음이 내 안에 고인 어떤 질문을 해석하고자 하는 여정이었기 때문이다. 교수라는 직함을 반납하는 동시에 나는 ‘노인’이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인된 직업으로 일정 수준의 소득을 벌어들이지 않는 이상, 나이든 자는 개인의 선택이 아닌 사회적인 잣대로 ‘노인’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는 엄청나게 충격적인 깨달음이었다. 갑자기 고독이 밀려왔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노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진지한 질문이 뒤따랐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집을 나섰다. ― 본문 중에서

 

 

분리된 존재, 분리된 공간으로서의 퇴적 공간

노인 문제에 대한 기존의 접근이 사회 고발 차원에서만 이루어졌다면 이 책은 현상을 넘어 좀 더 본질적인 고찰을 시도한다. 철학과 사회학, 역사와 미술작품을 넘나드는 인문학적인 해석은 노인 문제가 정책적으로 해결할 시사적 이슈 이전에 체온을 지닌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고독과 연민의 문제임을 독자에게 환기시킨다.

‘1부 노인, 그들은 누구인가?’에서는 영화와 그림, 통계청 자료, 인문학자의 이론을 통해 소외된 존재, 분리당한 존재로서 노인의 실체를 파악하고, ‘2부 그들만의 영역을 탐색하다’에서는 종묘시민공원, 무료급식소, 허리우드 클래식, 노인복지센터 등 노인들이 머무는 공간을 직접 찾아나서 노인들의 생존 양상을 취재한다. 현장 취재 중심이었던 2부과는 달리 ‘3부 고독과 소외의 진짜 얼굴’에서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자화상」, 안견의 「몽유도원도」 등 미술 작품을 사색함으로써 노인이 머무는 시공간을 색다른 방식으로 해석한다. ‘4부 생존을 증명하기 위한 전투’에서는 어버이연대의 집회, 박카스 아줌마의 하루를 생생히 기록해 노인이 처한 인정 투쟁의 현장을 전달한다. 마지막으로 ‘5부 죽기 위해 산다’에서는 죽음의 의미와 마지막까지 삶의 존엄성을 놓치지 않는 인간의 의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지금 우리 사회는 정의가 사라진 지 오래 되었어요. 대통령이나 국무위원들을 믿을 수 있습니까? 국회청문회 보셨죠? 다운 계약서 작성, 위장전입, 논문표절, 세금포탈, 병역면제 등은 국무위원들의 5대 필수 스펙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국회위원들은 믿으세요? 지자체장들은요? 그렇다고 검찰이나 사법부는 살아 있다고 보십니까? 심지어 종교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예요. 지금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죠.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이제 이 사회에 아무런 기대도 없어요. 사회 지도자들이 정직합니까, 또 신뢰할 만합니까? 시간이 흐르면 나아질 거라는 어떤 기대도 없으니 우리 세대 사람들이 악만 남은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죠. 마음 붙일 어떤 기관도, 단체도, 개인도 없어요. 기대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우리한테 물질적인 온당한 예우를 해 주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 본문 중에서

 

 

목차

저자의 말 노인을 위한 도시는 없다

 

들어가는 글 ‘늙음’을 응시하다

 

1부 노인, 그들은 누구인가

1 버림과 버려짐

2 광인들의 배

3 아브젝시옹, 쓰레기 미학

 

2부 그들만의 영역을 탐색하다

4 참여자와 관찰자

5 ‘죽지 않는 사람들’의 종묘시민공원

6 낙담과 불신의 공간

7 허리우드 클래식

8 현대판 기로소, 서울노인복지센터

 

3부 고독과 소외의 진짜 얼굴

9 잉여 인간, 잉여 얼굴

10 종로3가 역의 관수도

11누가 도원의 꿈을 꾸는가

 

4부 생존을 증명하기 위한 전투

12 인정 투쟁

13 슬로우 시티를 떠도는 ‘어르신들’

14 늙은 디오니소스의 밤

15 박카스 아줌마의 하루

 

5부 죽기 위해 산다

16 삶과 죽음의 공동경비구역

17 톨스토이가 보여 준 세 가지 죽음

18 우리의 영혼은 나비인가

19 가족 가상 체험

 

나가는 글 퇴적 공간의 존재 이유

참고 문헌

 

작가 소개

오근재

사람과 공간, 예술이 지닌 가치에 평생을 천착해 온 학자이자 교육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공예학부 도안과, 같은 대학 산업미술대학원을 졸업했다. 홍익공업전문대학 도안과 교수, 홍익대학교 조형대학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는 데 힘쓰는 한편, 홍익대학교 조형대학장과 영상대학원 원장, 한국그래픽디자이너협회 회장, 한국디자인학회 회장, 한국디자인진흥원 이사, 서울디자인센터 대표이사로 활동했다. 2010년 한국디자인학회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했고, 대한민국산업디자인전람회 초대 디자이너다. 현재 (사)한국디자인학회와 시각정보디자인협회 상임자문위원을 맡고 있으며 연세대학교 특별 초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 『인문학으로 기독교 이미지 읽기(홍성사)』, 『인간심리와 그래픽 디자인』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인간의 시각, 조형의 발견』, 『디자인 디멘션』 등이 있다.

독자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