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불꽃 같은 나라 러시아,
그 찬란한 천 년의 미술 이야기
– 러시아 본토에서 러시아 미술사 학위를 받은 저자가 쓴 국내 최초 정통 ‘러시아 미술사’
국내 최초 ‘러시아 미술사’ 출간!
이 책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출간되는, 더불어 국내 최초로 러시아에서 러시아 미술사를 전공한 저자에 의해 씌어진 정통 러시아 미술의 역사서이자 종합 안내서다. 기존에 출간된 러시아 미술 관련 책들이 특정 사조를 일별하거나 미술관 중심의 작품 해설서 정도였다면, 이 책은 12세기 종교화인 이콘화부터 이동파, 상징주의, 러시아 아방가르드,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거쳐 오늘날 현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러시아 미술 천 년을 시대와 양식, 작가와 작품에 따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알기 쉽게 소개하고, 폭넓은 사회 문화적 맥락 속에서 통찰력 돋보이는 깊이 있는 예술 감상을 제공한다.
동양인들에겐 서방이지만, 서유럽인에게는 동방인 나라, 러시아. 유럽에서 가장 늦게까지 존속한 봉건제, 사회주의 혁명의 실험, 혹독한 내전과 세계 대전, 사회주의의 붕괴와 급속한 개혁. 러시아의 예술 문화 속에는 그 격렬한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이 책은 격변의 역사를 배경으로 러시아 문화 예술 사상이 꽃피워 온 여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러시아 문화 종합 안내서이자, 도식적인 연표와 틀에 박힌 미술 해설이 아닌 이야기의 힘을 빌어 서술한 러시아 미술 입문서이기도 하다. 예술가들의 뜨거운 혼과 열정이 담긴 수많은 예술 작품들을 통해 누구나 쉽게 러시아 미술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다. 현재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되고 있는 전시회「칸딘스키와 러시아 거장전」(2008년 2월 27일까지)을 알차게 감상하고자 하는 관람객에게 유익한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편협한 서양 미술사에 가려진 러시아 미술의 위대성을 재발견하다
이 책은 서유럽의 시각으로 덧칠된 러시아 미술 이해의 한계를 극복하고 그 정당한 평가를 위한 진지한 시도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그 유명한 미술사가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에도 러시아 미술은 없다. 현대 미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칸딘스키나 말레비치가 러시아인이며 러시아적인 삶에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작가라는 사실도 간과되는 지경이다. 현대 미술의 발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들을 배출한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미술이 제대로 다뤄지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데올로기 문제가 개입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로 인해 레핀, 세로프, 브루벨 같은 세계적 수준의 러시아 작가들조차 정당한 평가는커녕 서양 미술사에 이름조차 올리지 못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 책은 편협한 서양 미술사에 가려진 러시아 미술의 여러 거장들을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찬란한 러시아 미술의 세계를 심도 깊게 통찰한다.
개혁 후 20년이 가까워지는 시점에 러시아 미술은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최근 세계 2대 경매 회사인 크리스티와 소더비 경매에서 고가로 낙찰되는 러시아 작가의 미술 작품들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앞으로 러시아 미술에 대한 세계 미술계의 관심은 눈여겨 볼 만할 것이다.
여섯 개의 키워드로 들여다보는 웅장한 러시아 미술의 세계
천 년의 러시아 미술사는 러시아인들이 누구인지를 스스로 물어가는 과정이었으며 러시아인의 삶에 관한 질문이 이어지고 답이 주어지는 과정이었다. 러시아 예술가들은 ‘러시아에서 진실하게 사는 것’에 대한 열망에 충실하게 반응했으며, 그들의 실천은 그에 대한 응답으로서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러시아 특유의 위대한 미술사를 탄생시켰다.
이 책은 이콘화, 표트르 대제의 개혁, 이동파, 예술 세계파, 러시아 아방가르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여섯 개의 굵직한 키워드 중심으로 천 년의 러시아 미술사를 한 편의 대하드라마처럼 펼쳐 보여 준다.
기적의 그림, 중세 이콘화
러시아의 종교화인 이콘화는 서유럽과 달리 오랫동안 그 전통이 유지되었다. 이콘화는 단순한 그림이 아닌 지상에 신의 세계를 옮겨진 것으로 여겨졌다. 1917년 혁명 이전까지 러시아인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이콘화가 있었다. 러시아인들은 가장 신성한 곳, ‘크라스느이 우골’이라고 불리는 집 안의 동편에 이콘화를 놓아두고 그 앞에서 늘 기도를 했다. 이콘화는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기적의 힘을 갖고 있는 성물이었다. 훗날 말레비치는 이 전통을 이어 자신의 작품을 전시실 동편에 걸어두게 하기도 했다. 타타르 몽골을 격퇴시키고 러시아를 지켜 낸 기적의 그림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이콘화 「블라디미르의 성모」는 러시아 중세 미술뿐 아니라 비잔틴 미술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성모상 중 하나다.
표트르 대제의 개혁과 미술의 근대화
18세기 초 표트르 대제의 개혁은 중세의 긴 겨울잠에서 빠져 있는 러시아를 깨웠다. 서유럽의 신문명이 유입되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미술 아카데미’가 설립된 이후 근대적 미술 교육제도가 정착됨으로써 전문 화가들이 배출되기 시작했다. 18세기는 ‘초상화의 황금시대’라 할 만큼 귀족 사회의 근대화 열망을 담은 초상화가 무수히 제작되었다. 19세기 전반에는 ‘러시아 풍속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베네치아노프가 역사화를 강요하는 아카데미즘을 극복하고 미술의 새 장은 열었고, 트로피닌과 소로카 같은 농노 출신의 화가들이 러시아 민중들의 삶을 그린 풍속화가 등장하였다. 한편 시대의 대세를 따른 당대 대표적인 역사화가 브률로프는 아카데미 미술의 쇠퇴와 함께 잊혀져갔다. 이에 반해 삶의 진실을 찾아 고뇌의 길을 걷다 간 이바노프는 20여 년 동안 헌신을 쏟은 「민중 앞에 나타난 예술 그리스도」를 통해 사후 명성을 얻게 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연출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세계 미술사상 유례없는 독특한 화파 ‘이동파’
1870년 결성해 1923년 마지막 전시를 갖고 해체되기까지 50년 넘게 존속한 이동파는 러시아 미술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규정짓는다. 러시아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동시대의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여러 도시로 이동해 가며 전시회를 개최한다는 의미에서 이름 또한 ‘이동파’라고 붙였던 것이다. 삶 속으로 치열하게 파고든 화가들의 의식은 회화에서 사실주의적이고 서술적인 성격을 최고의 가치로 만들었다. 이 시기 활동했던 세계적인 지성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의 민중 지향성을 떠올려 보면 이동파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시슈킨과 레비탄은 찬란한 태양이 빛나는 남국의 이상향적인 풍경에 대한 동경에서 벗어나 러시아 자연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일깨웠고, 마소예도프와 야로센코를 비롯한 여러 풍속화가들은 농노 해방과 민중 운동과 더불어 달라져 간 러시아 민중들의 희노애락을 생생하게 담아 냈다. 러시아 미술을 한 단계 도약시킨 거장 레핀, 러시아의 가장 위대한 역사화가 수리코프, 초상화의 대가 세로프 등이 새로운 미학의 세계를 열어 나갔다.
현대 미술을 이끈 예술 세계파와 아방가르드
1890년대의 예술 세계파는 상징주의와 모더니즘 미술을 고리로 러시아 미술과 서유럽 미술을 연결시키는 지점이 된다. 브루벨, 페트로프보트킨 등의 예술 세계파 작업으로 새로운 자극을 받은 신세대들은 ‘아방가르드’라는 이름으로 세계 미술 무대에 등장한다. 일견 이동파의 사실주의를 가장 반대한 것처럼 보이는 러시아 아방가르드들의 격렬한 형식 실험과 극단적인 추상화를 이끌어 낸 것도 진실한 삶에 대한 열망이었다. 러시아 아방가르드들은 좀 더 강력한 예술가들의 권력을 주장했다. 그들은 모순된 세상을 드러내고 고발하는 일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예술 창작에 만족하지 않고 현실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 신적 지위를 주장했다. 아방가르드 프로젝트의 핵심은 ‘예언가적인 작가’의 위대한 활동성 그 자체였다.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프로젝트는 완전히 새로운 감각을 가진 새로운 시대의 인물을 겨냥하고 있었으며 예술가만이 새로운 시대를 예감할 수 있다고 믿었다. 타틀린의 「제3인터내셔널 기념탑」은 예술이 새로운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으로 설정되어 있다. 로드첸코의 포토몽타주와 엘 리시츠키 역시 예술이 현실에 능동적으로 작용하고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
러시아 아방가르드들의 창조의 열정은 1917년 혁명의 분위기 속에서 삶과 예술을 일치시키고 동시에 갱신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열망은 사회주의 정권 수립으로 꺾이고 말았다. 냉전은 서유럽 미술과 러시아 미술 사이를 완전히 단절시켜 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움 가보와 칸딘스키의 바우하우스에서의 활동은 구성주의로 서유럽 미술사를 풍부하게 만들었고, 러시아 비테프스크의 시골 풍경을 담은 샤갈의 그림들은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스탈린 정권에 의해 매장된 말레비치의 유산은 1960년대 이후 서유럽과 미국의 미술에서 미니멀리즘적인 취향의 추상화에서 재발굴되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오늘날의 러시아 미술
1932년 사회주의 리얼리즘 선언과 더불어 작가들은 정치적․사회적 이상을 찬양해야 했고, 사회주의적 내용에 걸맞는 특정 형식을 강요받음으로써 미술은 정체기로 접어들게 된다. 쥘린스키와 포프코프는 사회주의 공식 미술에 강한 회의감을 드러내고 있다. 1970년대부터는 라빈, 바이스베르크 등처럼 당 주도의 예술가 조직에 가담하지 않고 독자적인 전시를 시도하는 비공식 미술가들이 출현했고, 체제 비판적인 그림을 그린 젊은 세대에 의해 모스크바 개념주의와 소츠 아트가 탄생하기도 했다. 개혁 이후 쿨릭, 소코프 등 현대 작가들은 아직까지 자기 정체성 찾기를 진행하고 있다. 자하로프의 2003년 작 「러시아 미술사」는 이런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1 러시아 이콘화
슬픈 눈의 성모
분노한 예수에게 기적을 갈구하다
예수, 연민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2 표트르 대제와 미술의 근대화
표트르 대제를 개혁하라
초상화의 황금시대
그때 그들은 정말 행복했을까?
엇갈린 운명의 두 화가
3 이동파의 시대
세계 최고의 스토리텔러들
화가와 인텔리겐치아
풍경의 발견
풍속화의 시대
레핀의 모든 그림은 사건이었다
모스크바를 사랑한 코사크
시대의 영혼을 꿰뚫어 본 세로프의 눈
4 상징주의 미술과 모더니즘
상처 입은 악마
예술의 세계로
푸른 장미와 붉은 말
5 러시아 아방가르드
낡은 것에서 새로운 것이 튀어나오다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때려라
유토피아를 꿈꾸다
6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개혁 이후 현대 미술
붉은 깃발을 휘날리며
부록
러시아 4대 미술관 가이드
내 인생에서 가장 인상적인 미술전시회는 ‘러시아 사실주의’ 작품을 전시한 전시회였다. 러시아의 황량하고 추운 이미지와 이를 표현한 회화의 아우라가 너무 잘 어울렸었다. 그 후 우연히 이 책을 보게 되었고, 구매한 뒤 단숨에 끝까지 읽어버렸다. 전시회의 감동이 여전히 남은 상황에서 저자가 러시아 미술관에서 받은 감동이 그대로 전달되었다고 말하면 좀 과한 측면이 있지만, 어쨌든 그 당시엔 책 내용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이해되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면 반응이 좋은 경우가 많지 않았다. 아마도 한국에서 유명한 러시아 미술가는 칸딘스키이기에, 중세부터 근대까지의 러시아 미술에 대해 흥미를 가지기란 쉽지 않은 듯하다.
그렇지만 러시아 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전시회를 보고 이 책을 보길 권한다. 서유럽에 치중된 미술에 대한 관심이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