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어느 미술 중독자의 고백
출판사: 민음인
발행일: 2009년 12월 21일
ISBN: 978-89-942-1009-4
패키지:
가격: 11,000원
분야 경제경영·자기계발
페기 구겐하임 서거 30주년“20세기 최고의 컬렉터, 현대미술의 후원자이자 배고픈 예술가들의 연인”그녀가 직접 남긴 열정의 기록전설적인 컬렉터이자 화가들의 후원자이며 베네치아 구겐하임 미술관의 설립자인 페기 구겐하임, 그녀가 1960년에 펴낸 회고록이 (주)민음인에서 페기 구겐하임 서거 30주년에 맞추어 출간되었다. 미술에 문외한이었던 자신이 어떻게 현대 미술에 중독되었으며 작가가 아님에도 어찌하여 20세기 미술사에 기록될 전설 속의 인물이 되었는지를 가감 없이 전해 주는 의미 있는 기록이다. 그녀가 생전에 교류한, 지금은 거장이 된 수많은 예술가(브랑쿠시, 콜더, 폴록, 에른스트, 탕기 등)들의 기행과 열정, 사생활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비밀스러운 에피소드들이 함께 담겼다.“알콜중독자가 술을 구입하듯, 마약중독자가 아편에 지갑을 열듯 페기는 물려받은 재산을 그림을 사는 데, 화가를 부양하는 데 아낌없이 탕진했다. 그 순수한 맹목성에 경의를!……특유의 유머와 촌철살인의 재치가 어우러진, 이 짧고 주관적이며 비전문적인 자서전에는, 수백 페이지에 걸친 땀내 나는 전기들로도 포착하지 못한 그 아찔한 열정이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내밀하고도 솔직한 에피소드와 더불어 놀랍게도 거의 매 페이지마다 툭툭 터져 나온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이 책은 20세기 미술계의 전설적인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의 자서전이다. 거부의 집안에 태어났으나 스스로 삶을 개척하여 컬렉터가 됨으로써 현대 미술의 흐름을 만들었으며 2차 대전 전후로 유럽과 미국 미술계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 그녀의 삶을 본인의 육성으로 전한다. 줄거리1898년 뉴욕, 전 세계의 구리 광산을 사들여 재벌이 된 구겐하임 가문에 태어났으나 바람기 있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화, 이어서 타이타닉 호 침몰로 아버지의 사망 등을 겪으며 호화롭지만 정서적으로는 불안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이십 대에 거액을 상속받고 파리로 건너간 후 여러 문인, 예술가와 교류하고 연애와 결혼, 이혼을 반복하던 중 아방가르드의 거장 뒤샹에게 미술을 배우면서 현대 미술에 중독된다. 이후 런던에 구겐하임 죈 화랑을 열어 본격적으로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으며 브랑쿠시, 콕토, 칸딘스키, 아르프 등을 미술 무대의 전면으로 끌어내고, 제2차 세계 대전 중 유럽의 미술품들을 ‘하루에 한 점씩’ 사 모아 초현실주의 컬렉션을 이룬다. 1942년에는 뉴욕에 금세기 미술 화랑을 개관해 유럽에서 수집한 컬렉션을 미국에 선보이는 한편 콜더, 폴록, 머더웰 등을 소개한다. 책 곳곳에는 로렌스 베일, 존 홈스, 에른스트 등 그녀의 남편들과 사랑에 대한 탐닉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자신이 만난 수많은 예술가들에 대한 회고와 작품 수집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공개하며 마지막으로 현대 미술에 대한 평과 컬렉터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하며 글을 맺는다.컬렉터로서 미술사에 전설이 된 여인페기의 삶은 곧 현대 미술의 기록이다. 세기의 예술 후원자이자 스스로가 예술적인 삶을 살았던 페기 구겐하임은 삶 자체에 이미 극적 요소가 가득하다. 이 책의 추천사에서 홍대 예술학과 유재길 교수는 “그녀의 미술 입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20세기 아방가르드 미술 거장인 마르셀 뒤샹인가 하면 허버트 리드가 자문 역할을, 뉴욕에 금세기 미술 화랑을 설립할 당시 그녀의 남편은 초현실주의 화가 막스 에른스트였다. 또한 브랑쿠시를 비롯하여 자코메티, 아르프, 헨리 무어, 콜더 등 현대 조각의 거장들과 수많은 화가들이 그녀의 절친한 친구였다.”라고 이야기한다. 체계적으로 미술에 대한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스스로 예술가들과 교류를 통해 배우고 후원자이자 컬렉터로 성장해 나가며 미술의 대중화에 선구적으로 앞선 페기는 후세에 유럽의 초현실주의와 미국의 추상 표현주의를 접목시킨 것으로 평가받으며 예술가가 아니라 컬렉터, 후원자로서 미술사에 전설로 남는다.
내 생각엔 전쟁 때문에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그림을 파는 데 열심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인정사정없이 밀어붙였다. 우리 집 전화기는 하루 종일 울려 댔고,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사람들은 침대로 그림을 가져왔다. p76(제2차 세계 대전 중 하루에 한 점씩 그림을 사들이던 때에 대한 기록. 이때 초현실주의 명작들을 대량 구입한다.)실망스럽게도 루브르 박물관 측은 내가 가진 그림은 보존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공간을 내주기를 거절했다. 그들이 보존적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그림은 칸딘스키 작품 한 점, 클레와 피카비아 작품 몇 점, 브라크의 입체주의 작품 한 점, 후안 그리스 작품 한 점, 레제 작품 한 점, ……몬드리안의 ‘데 스틸’ 작품 한 점이었다. 초현실주의 작품 중에서는 미로, 막스 에른스트, 데 키리코, 이브 탕기,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와 빅토르 브라우너 작품이 있었다. 또한 브랑쿠시, 자크 립시츠, 앙리 로랑스, 페프스너, 자코메티, 헨리 무어, 아르프의 작품도 있었지만, 루브르 박물관 측은 그것들을 조각 작품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p83(전쟁 중에 컬렉션이 빠른 속도로 불어나 보관할 곳을 찾는데 루브르 측에서 보관을 거절하자 나열한 리스트)브랑쿠시는 꿰뚫는 듯한 검은 눈에 턱수염을 지닌 작지만 멋진 사내였다. 그는 경험 많은 농부와, 말 그대로 신을 합쳐놓은 것 같은 존재였다. 그와 함께 있으면 무척 즐거웠지만, 불행히도 나에 대해 지나친 소유욕을 갖고 있던 그는 내 모든 시간을 원했다. …… 그는 나를 사랑했지만 나는 그로부터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로렌스 베일은 농담 삼아 말하기를, 브랑쿠시의 모든 조각품을 상속받기 위해서는 내가 그와 결혼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가능성도 시도해 보았지만, 브랑쿠시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 그가 나를 자기 작품을 상속할 사람으로 생각지 않는다는 것을 이내 알 수 있었다. 그보다는 내게 작품 전체를 판 다음 그 돈을 자신의 나막신 안에 숨기는 편을 택했으리라.- p78(브랑쿠시에 대하여)1942년 10월 20일 화랑 개관일 밤, 나는 행사를 위해 맞춘 하얀 이브닝드레스를 입고 한쪽 귀에는 탕기가 만들어 준 귀고리를, 다른 쪽 귀에는 콜더가 만들어 준 귀고리를 했다. 초현실주의와 추상 미술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겠다는 위지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이었다. -p111(그녀의 금세기 미술 화랑은 전체 전위 활동의 중심으로 부상해 폴록, 머더웰 등을 발굴한다.)대형 캔버스를 구한 폴록은 그것을 걸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자기 집 벽을 허물었다. 그는 캔버스 앞에 앉았지만 여러 날 동안 아무런 영감도 떠오르지 않자 점점 의기소침해졌다. 그러자 그는 혼자 있게 되면 새로운 아이디어와 좀 더 자유로운 기분이 되리라고 기대하고 아내를 시골로 보냈다. 하지만 시골에 갔다가 집에 돌아온 크래스너는 아무런 진전도 없이 여전히 생각에 잠긴 채 캔버스 앞에 앉아 있는 폴록을 발견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두어 시간 만에 걸작을 그려 냈다. 그 벽화는 그때까지 그린 폴록의 그 어느 작품보다도 더 추상적이었다. 그것은 청색, 흰색, 노란색의 추상적인 띠처럼 이어지는 형상을 리드미컬하게 그려 놓고 그 위에 검은색 물감을 튀기듯 떨어뜨려 완성한 그림이었다. p117~(폴록의 작업 에피소드)그로써 나는 콜더가 만든 침대에서 잠을 자는 유일한 여자가 되었다. 그뿐 아니라 그의 거대한 모빌 귀고리를 한 유일한 인물이기도 했다. 콜더의 보석으로 치장하는 행운을 안은 뉴욕 여자들은 더 있었지만, 그들이 지닌 것은 브로치나 팔찌, 목걸이뿐이었던 것이다.-p125 (모빌 창시자인 콜더와의 에피소드)20세기는 이미 우리에게 충분히 많은 천재를 선사했고, 더 이상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좋은 밭을 만들기 위해선 이따금 놀려 두어야 하지 않는가! 오늘날 예술가들은 독창적이라기에는 너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그런 그림들은 더 이상 그림이 아니다. 지금으로서는 20세기가 배출해 낸 이들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피카소, 마티스, 몬드리안, 칸딘스키, 클레, 레제, 브라크, 그리스, 에른스트, 미로, 브랑쿠시, 아르프, 자코메티, 립시츠, 칼더, 페프스너, 무어 그리고 폴록에 말이다. 지금은 창작의 시대가 아니라 수집의 시대이다. 우리가 가진 위대한 보물을 보존해 대중에게 보여 줄 의무가 우리에게 있지 않은가. -p193(페기 구겐하임이 이야기하는 컬렉터의 의무, 미술 대중화에 대한 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