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비우고, 다시 채우라”
순수 국내파이면서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가 된 이상봉.
무작정 패션계에 뛰어들어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오기까지
그만의 패션 철학, 영감과 공개하지 않았던 이야기들
1980년 패션 디자이너로 데뷔해 현재까지 30년 넘게 한길을 걸어오며 한국 대표 디자이너가 된 이상봉의 패션 철학과 열정, 디자이너로서 의미 있는 경험담을 엮은 『이상봉의 패션 이즈 패션(Fashion is Passion)』이 (주)민음인에서 출간되었다.
이상봉은 1985년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 ‘이상봉 부티크’를 연 후 한국의 전통을 패션에 반영하는 작업으로 주목받아 왔으며 2006년 패션에 한글을 입힌 작업을 파리에서 공개하며 ‘한글 패션 디자이너’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 책은 패션 디자이너로서 그의 작업과 패션 철학은 물론, 디자이너로서 특별했던 순간과 의미 있던 발전의 계기들, 디자인 영감, 작업과 모델, 일상과 가족에 이르기까지 내밀한 이야기들을 함께 담았다.
해외 시장 진출기, 한글과 패션의 접목, 김연아의 스케이팅 의상 제작, 탁구 국가 대표 유니폼 디자인, 「무한도전」패션쇼 , 드라마틱하고 퍼포먼스가 있는 그만의 패션쇼, 파리 컬렉션 현장 등 대중이 궁금해하는 패션 이야기가 펼쳐진다. 시기에 따라 변화한 80년대 이후 패션과 국내외 패션계의 면면, 오랜 경륜을 바탕으로 한 후배 디자이너들을 위한 주옥같은 조언들도 책 곳곳에 담겨 있다. 60여 컷에 달하는 패션 현장을 담은 화보가 보는 재미를 더한다.
패션 디자인 33년, 이상봉의 패션 철학
“대학 시절,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연극을 버리고 패션을 택했다.
단 1%의 가능성만 있어도 도전했다.
이를 통해 얻은 것도 잃은 것도 많지만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열정에는 트렌드가 없다. 나의 도전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 패션 디자인 1세대를 대표하는 앙드레 김 이후, 2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손꼽히는 이상봉. 고 앙드레 김이 패션의 대중화 및 한국의 디자인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면, 이상봉은 한글, 조각보, 태극문양 등 가장 한국적인 소재를 디자인 재료로 사용함으로써 한국적인 것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대학에서 전공 삼은 연극을 뒤로 하고 패션으로 눈을 돌린 뒤, 국제복장학원에서 디자이너의 꿈을 키워 나갔다. 1985년 자신의 이름을 건 부티크 이상봉을 론칭한 후 다양한 실험을 통해 “한국적인 것을 세계화하는 디자인”을 모토로 ‘우리 것’을 형상화하는 작업을 해 오고 있다. 2013년 올해가 패션 디자이너로 활동한 지 33년, 브랜드를 낸 지 만 28주년이다.
그는 이 책에서 디자이너는 “끊임없이 비우고, 다시 채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디자이너로서 늘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 주기를 소망했고, 그때그때의 감정에 충실한 작업은 디자인을 통해 고스란히 나타났다. 테크노아트에서 샤머니즘을 거쳐 한글, 단청, 조각보로 이어지는 그의 정체성 찾기는 운명처럼 계속되고 있다.
나는 “디자이너는 바람이고 물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릇에 따라 언제나 담긴 모양이 바뀌는 물이나, 어디든 떠날 수 있는 바람처럼 내 정신과 영혼, 스타일도 자유롭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상봉 스타일’은 없다. 고착된 스타일보다 내가 지금 무엇에 흥미를 느끼고 어떤 것에 감동받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마음 움직이는 대로 옷을 지으며 끝없이 변화하다가 죽고 싶다.
37세에 더 이상 나이를 먹으면 안 되겠다 싶어, 디자이너로서 은퇴하기 전까지는 언제나 37세에 머물기로 결심했다. 3과 7을 더한 수의 끝자리는 0, 제로다. 나는 무(無)의 상태가 좋다. 사물이 생성되면서 동시에 소멸되는 이 지점은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다. ‘나를 항상 비워라’는 나의 모토이자 내 작업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책은 총 4부로 나뉜다. <1부 내 인생의 두 번째 꿈, 패션 디자인>은 대학시절 연극배우의 꿈을 버리고 무작정 패션을 시작한 이야기를 비롯해 파리 프레타포르테 전시회 첫 참가, 패션쇼의 전후 등 패션계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2부 나의 친구들, 나의 사람들>에서는 김연아, 쥘리에트 비노슈, 무한도전 6인방 등 유명인을 비롯해 스승과 가족, 모델 헤어디자이너 스태프 등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영감을 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3부 ‘영혼’을 담은 디자인을 위하여>에서는 디자이너 이상봉의 일상과 함께 상상력과 열정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4부 일상을 향하여, 세계를 향하여>에서는 한국적인 것을 세계화한 사례들을 통해 세계 속에서 한국 패션의 위상을 확립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을 엿보게 된다. 책 말미 이상봉론에서는 패션 평론가 유재부가 이상봉이 디자이너로서 걸어온 33년을 정리한다.
딸의 웨딩드레스를 만들며 느낀 소회, 여동생의 발인을 보지 못하고 치러야 했던 파리 컬렉션 등 가슴 뭉클해지는 에피소드가 33년간 디자이너로서의 여정 속에 사이사이 담겨 있다. 한편 이상봉만의 퍼포먼스가 있는 패션쇼 화보가 곳곳에 올컬러로 담겨 그의 패션사를 엿볼 수 있게 한다.
후배 디자이너들을 위한 조언
▶디자이너는 감성이 있어야 한다. 강하고 근육질적인 것보다 여리고 감성적인 정서는 패션 디자이너뿐 아니라 모든 아티스트가 지녀야 할 요소이다.
▶마음이 가라앉아 정체되면 디자이너로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없다. 패션 디자이너는 마음의 벽을 쌓지 말고 항상 가슴을 비워 두어야 한다. 빈 가슴에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과 감동을 채워 넣으라.
▶대중이 보지 않는 영화나 듣지 않는 가요가 아무 의미가 없듯, 대중이 입지 않고 외면하는 패션 또한 존재 의미가 없다.
▶디자인에 대한 발전적인 비판이나 애정 어린 지적을 기꺼이 받아들이라. 패션 저널리스트, 소비자, 바이어 할 것 없이 나를 향한 소리에 귀 기울이라.
▶꿈과 열정은 디자이너에게 비타민과 같은 것이다. 절실하게, 자기 인생을 걸라.
▶어렵고 힘들더라도 해외에서 열리는 수주 전시회에 직접 나가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힘을 키우라.
▶스스로 무엇에 흥미를 느끼고,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는지, 어떤 것으로부터 감동을 받는지 주시하라.
▶보이는 것을 디자인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생각을 디자인하는 것은 노력과 공부가 필요하다.
▶마우스를 클릭하며 얻을 수 있는 가벼운 지식보다는 수고스럽게 책장을 넘기며 아이디어를 스케치하는 창의적인 디자이너 정신이 필요하다. 창의적인 디자인은 수학적 계산이 아닌 감성적인 스케치로부터 나온다. 뇌는 손끝을 통해 더욱 창조적인 상상을 뱉어 낸다.
▶여행, 영화, 독서, 그림, 사진 등 보이는 모든 것으로부터 영감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영감을 받은 찰나의 감동은 상상력을 통해 구체화되고 실현될 수 있다. 디자이너에게 상상력은 도전이자 의무이다.
▶디자인을 위한 충전의 시간을 가지라. 고인 물은 썩는다. 많이 보고 듣고 읽으려고 노력하라.
▶공모전 입상은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잠재성과 능력을 인정받는 일이므로 의미 있다. 하지만 콘테스트는 성공하는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백 가지 요소 중 하나일 뿐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도전 자체가 의미 있으며 입상하지 못했더라도 자신이 무엇이 부족했는지 뒤돌아 볼 기회가 된다.
▶해외 시장을 목표로 했을 때는 경쟁해서 더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염두에 두라.
▶대중과 시대와 호흡하는 것이 좋은 디자인이다. 팔리지 않는 옷은 죽은 옷이다.
프롤로그 바람처럼 물처럼 눈물처럼 ―6
제1부 내 인생의 두 번째 꿈, 패션 디자인 ―13
꿈을 버리고 열정을 얻다 ―15 | 나의 첫 파리 여행 ―21 | 퍼스트레이디 룩의 상징성 ―26 | IMF는 위기가 아닌 도전이었다 ―31 | 90일의 열정, 10분의 기적 ―37 | 사막의 신기루 ―44 | 뿔 달린 클럽 패션쇼 ―49 | 광염의 레드 소나타 ―56 | 이상봉 스타일은 없다? ―62 | 뮤지컬 「선덕여왕」 ―69 | 런던에 단청을 수놓다 ―74 | 배달의 기수들, 패션과 통하다 ―80
제2부 나의 친구들, 나의 사람들 ―85
쥘리에트 비노슈를 사랑하는 이유 ―87 | 패션 아이콘 마이클 잭슨 ―93 | 영원한 스승 최경자 선생을 기리며 ―98 | 작은 거인 오민 ―104 | 내가 사랑하는 디바 3인방 ―109 | 모델은 패션의 꽃 ―115 | 피겨 ‘퀸’ 김연아, 한글을 입다 ―124 | 평창동 사람들 ―132 | ‘무도’와의 만남은 행운이었다 ―137 | 나눔은 나를 위한 선물 ―144 | 시장으로 소풍을 가다 ―149 | 아빠의 웨딩드레스 ―153 | 내 마음속 별이 지다 ―158 | 키메라와 함께한 파리 컬렉션 ―163
제3부 ‘영혼’을 담은 디자인을 위하여 ―169
일편단심 민들레야 ―171 | 한류는 손맛에서 영근다 ―177 | ‘트렌드’를 읽으면 패션이 보인다 ―184 | 나는 매일 밤 꿈을 꾼다 ―189 | 가슴은 뜨겁게 지구는 차갑게 ―195 | 아주 특별했던 12월의 파리 ―202 | 나는 주말마다 나를 리노베이션한다 ―207 | 패션 콘테스트에 대한 단상 ―212 | 파리 패션과 향수 ―217
제4부 일상을 향하여, 세계를 향하여 ―223
패션과 아트의 창조적 포옹 ―225 | 루브르 박물관과 굿판 ―233 | 라이프는 디자인이다 ―240 | 영감과 소통의 예술, 한글 패션 ―245 | Lie의 전쟁 ―253 | 파리 패션의 힘 ―258
에필로그 패션은 나의 운명 ―263
이상봉론 물과 바람, 불 그리고 태생적 탐미주의자 글 패션평론가 유재부 ―270